[겨울 미각 여행] 입맛 돋우는 겨울 별미, 울진 죽변항 목로집·거제 외포항

입력 2015-12-14 07:03   수정 2015-12-14 09:58

울진 죽변항의 목로집
탁주 한잔에 쫄깃한 문어
다리는 통째로 먹어야 제맛!

거제 외포항
해장하러 갔다 또 한잔…
"1년을 기다렸다, 생대구탕"



맛은 언제나 질기고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오래된 항구에서 칼칼한 국물과 함께 들이켜던 한 잔의 소주, 야들야들하게 씹히는 문어다리, 매서운 추위까지 몰아내는 얼큰한 대구탕은 겨울철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먹거리다. 특별한 추억을 남기는 겨울 미각여행을 떠나보자.


술안주는 물론 해장까지…문어

울진 죽변항으로 들어가는 깔끔한 도로변에는 낡고 오래된 단층 건물 몇이 줄지어 서 있다. 그중 몇 집은 목로다. 죽변의 목로집에서 막걸리 한잔 마셔본 사람은 두고두고 죽변을 잊지 못한다. 오래되고 낡은 목로집의 풍경과 인심 때문이다.

목로의 분위기는 취흥을 돋우기에 그만이다. 나그네는 그중 한 목로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탁자 3개짜리 좁은 목로. 안주는 장치조림과 삶은 문어다. 장치는 동해바다 깊은 물에서 나는 물고기다. 동해 중북부 300~500m의 깊은 수중에 산다. 길 장(長)자가 들어간 생선답게 장어처럼 길다. 본 이름은 벌레문치. 겨울이 제철이다. 생물로는 노린내가 나서 먹기 어렵다. 말려서 조림으로 먹으면 노린내도 사라지고 쫄깃하고 단맛이 일품이다.

문어(참문어) 또한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에 향이 더 짙고 차지다. 문어가 술안주로 좋은 것은 술을 마시는 동시에 해장까지 시켜주는 보약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여성 실학자였던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쓴 생활백과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그 맛이 깨끗하고 담담하며, 그 알은 머리·배·보혈에 귀한 약이므로 토하고 설사하는 데 유익하다”고 했다. 목로집의 문어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문어에는 풋고추 썬 것과 초고추장, 기름장이 딸려 나온다. 길쭉하게 자른 문어를 보니 여주인의 솜씨가 가늠된다. 모름지기 모든 먹거리는 채소든 해물이든 다양한 부위의 맛이 한데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목로의 여주인은 “문어는 작은 게 맛있다”고 귀띔한다. “여그 사람들은 문어를 칼로 안 썰고 손으로 쥐어 뜯어갖고 먹어요.” 칼을 아주 안 쓴다는 것이 아니라 문어를 얄팍하게 자르지 않고 다리를 손으로 쭉쭉 찢어 먹는다는 말씀. 긴 문어다리를 통째로 먹어야 더 맛있기 때문이다.

겨울 죽변의 별미…방치조림과 문어

문어는 작은 것이 맛있다는 이야기는 어린 것이 맛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동해에서 나는 또 다른 명물, 대왕문어보다 맛있다는 주장이다. “깊은 바다에 사는 물문어는 삶으면 흐물흐물해서 맛이 없어요.” 죽변에서는 대왕문어를 물문어라고 표현한다. 물자 들어간 것은 쫄깃함이 덜하다는 뜻. 감칠맛 나게 삶아낸 여주인의 비결은 뭘까.

“물을 많이 붓고 끓여요. 소금 좀 넣고. 물이 팔?끓으면 머릴 쥐고 퐁당 담가요. 다릴 넣었다 뺏다 하다 솥에 넣고 뚜껑을 덮어요. 물이 다시 푹 끓어오르면 한번 저어준 다음 꺼내요. 그럼 여자들 빠마 머리같이 말려들어버려요. 다리가.”

외로운 나그네는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켜고 ‘여자의 빠마 머리같이 말려들어간’ 문어다릴 씹는다. 죽변은 오래전부터 제법 흥청거리던 어항이다. 여주인도 그 시절을 몸으로 살았으니 사연이 깊다.

“이 앞바다가 황금 어장이라요. 그 전에는 배가 말도 못하게 들어왔어요.”

술이 무르익는 시간. 어둠이 짙어질수록 죽변의 밤은 환해진다. 옆자리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던 선원은 외로움에 지쳤는지 차를 배달시켰다. 다방 아가씨는 커피를 따라주고 그녀도 한 잔 마시더니 바로 일어서 나가버린다. 선원은 다시 혼자 소주잔을 들이켠다. 죽변 항구의 밤은 깊도록 외롭다. 하지만 겨울 죽변에는 장치조림과 문어가 있어 삶은 다시 견딜 만하다. 외로움에 지친 이들은 겨울 죽변으로 가볼 일이다.


겨울 보약 같은 외포항 생대구탕

겨울철 별미를 맛볼 수 있는 또 한 곳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경남 거제다. 거제의 겨울은 대구철이다. 대구는 생대구탕이 최고다. 1년을 꼬박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 생대구탕. 겨울이 아니면 제맛을 볼 수 없는 것이 생대구탕이다. 한류성 어족인 대구는 12~2월이 제철이다. 지방이 적고 담백해 시원하고 개운하기 이를 데 없다. 대구에는 비타민 A, B와 간 기능 강화에 좋은 타우린도 풍부하다. 대구탕을 斂資?속풀이 술국으로 쳐주는 이유다. 특히 암컷보다는 수컷으로 끓이는 것이 좋은데 이리(흔히 곤이라고 하는)는 고소하고 부드럽다. 이리에는 무기질과 아르기닌이 많아 원기회복에 좋다. 입이 커 대구(大口)인데 그 큰 입만큼이나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탐식성 어류다. 심지어 상어새끼나 제 알, 제 새끼, 돌자갈까지 삼키는 무자비한 식성의 소유자다. 한국 바다에는 동해대구와 황해대구 두 종류가 있는데 황해대구는 작기 때문에 왜대구라고 한다.

요즘은 다시 잡히고 가격도 많이 내렸지만 이 동해대구가 한때는 멸종위험에 이른 적도 있었다. 탐욕스런 대구의 식욕만큼이나 탐욕스런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치어까지 마구 잡아들인 결과 대구가 귀해 금값이었다. 그래서 거제의 포구에서도 겨우내 대구 한두 마리 구경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 대구 한 마리에 100만원이 넘어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렇게 귀해졌던 대구가 다시 잡히기 시작한 것은 15년쯤 전부터 거제시에서 꾸준히 치어를 방류해온 덕분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대구를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됐다. 거제시 장목면의 외포항이 겨울 동해대구의 집산지다. 거제 지심도 동백꽃을 보고 내도의 원시림도 걷고 돌아가는 길에 외포항 생대구탕 한 그릇을 먹으면 겨울 보약이 따로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생대구를 사다 직접 탕을 끓여도 좋다. 싱싱한 대구는 회로 먹을 수도 있다. 대구탕을 끓이는 법은 이렇다. 물이 끓으면 자른 무를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자른 생대구와 이리를 넣고 소금으로만 간을 한다. 다른 채소는 나중에 넣는다. 그릇에 담아내기 전에 다진 마늘과 파, 풋고추와 붉은 고추를 잘라 넣으면 완성된다. 맑게 끓여야 시원하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탁해진다. 매콤하게 먹고 싶으면 청양고추를 넣으면 된다.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고 싶다면 겨울 외포항으로 가시라. 대물 대구들이 허기진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강제윤 시인(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gilgu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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